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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간 선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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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남숙 포교사의 여성 신행상담
불교에서의 믿음은, 인간은 누구나 진리(眞如)를 깨달을 수 있다는 절대적 신념을 기본으로 한다. 따라서 불교에서의 믿음은 항상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자 마음을 일으키는 ‘발심'과 함께 나타나고, 발심의 내용을 성취하고자 하는 실천의 행과 연결되어 있다. 불교 신행은 이렇듯 ‘믿음'과 ‘발심'과 ‘행'을 하나로 연결한 생활이며 궁극적인 깨달음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가정과 직장에서 주부이자 엄마, 며느리, 딸로서 1인4역을 해나가야 하는 여성 불자들에게는 절에 한번 나가는 기본 신행조차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당당한 여성 수행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이남숙 포교사로부터 삶과 수행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노하우를 들어보자.
● 이남숙 포교사 소개
‘희명화 보살’로 통하는 이남숙 포교사는 수행과 보살행, 가정살림에서 두루 모범을 보이는 여성 수행자이다. 조계종 서울·경기 포교사단 대학팀 팀장을 역임했으며 북서울 중학교 불교반과 산업대 불교동아리를 매달 찾아가 학생들에게 불심의 씨앗을 뿌려왔다. 또 신수회(현대불교신문 신행수기 당선자모임) 회장도 맡아 전국에 흩어져있는 60여명의 회원들의 단합을 도모하고 있다. 15년간 어린이 포교와 자원봉사 활동에 앞장서 온 그는 자상한 신행 카운슬러로서 인기가 높다.
문의 : hymunghw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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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신행 이야기 (오직 이것 뿐!) ㅣ 전체보기 |
2007/0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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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나 나는 분명히 말한다. 공부란 근기의 차이, 업식의 작용도 영향을 미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본바탕 자성자리 불성은 근본적으로 본래 무명이요, 본래로 진여이기 때문이다. 본바탕 자성자리 불성은 근본적으로 본래로 중생이요 본래로 부처이기 때문이다. 업식으로 인해서 무명이 생겨 진여를 가려서 부처가 중생이 되어 생로병사하고 육도윤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근본 바탕이자 자성자리인 불성이 근본적으로 부처인 것을 따로 보기때문에, 따로 쓰고, 따로 나누기 때문에 ,착각이 생겨 무명은 중생이요, 진여는 부처라 여겨 전도몽상 하는 것이다. 무명이 곧 진여요, 진여가 곧 무명이기 때문에 무명인 중생이 진여인 부처요, 진여가 곧 무명이요 무명이 곧 진여이기 때문에 진여인 부처가 무명인 중생인 것이다. 이것을 항상 같이 보고 드러내, 같이 만나서 같이 지키고, 같이 쓰고 같이 누릴 때 진정한 대 해탈, 대 안락의 대 감로요, 대 광명의 참나, 본나의, 불생불멸의 무한한 생명으로써 상주법계에서 나의 자성 체용의 작용인 생로병사와 육도윤회와 인과와 연기를 흥대로 이루어 자유자재 하는 것이다. ...... 즉 근본이 무명 이기에 항상 미할 수 있고, 근본이 진여 이기에 항상 깨칠 수 있으니, 곧 근본인 무명이 똑같이 깨어있는 깸이 되지 않고서는 미하고, 깨침이, 반복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스스로 항상 정진을 멈추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중생과 부처에 빠지지 않고 중생과 부처를 같이 쓸 때, 쌍차쌍조한 중도실상의 항사묘용의 참나, 본나 인 것이다. " [영흥선사 어록에서 펌]
우연한 기회에 절룩바리 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스님의 남루한 행색은 마치 걸인 처럼 보였습니다. 조계사 부근에서 뵐 수 있는 스님들 처럼 깔끔한 모습의 장삼 두루마기를 걸치신 것도 아니지만 환하게 웃고 계신 모습에서 무한정한 자비를 품고 계신듯이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 스님, 저는 늘상 한생각이 일어나서 번뇌와 망상이 많습니다. 왜 가만히 있어도 홀연히 한생각이 마음속에서 올라 올까요? "
" 한생각 일어남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무명의 근본은 진여 이기에 자꾸 나누어서 생각하니까 오히려 망상에 빠지는 겁니다. 한생각의 실체를 여실히 보면 무상이고, 연기된 현상이니까 헛깨비 갖고 씨름할 필요가 없지요......."
저는 항상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지켜보면 환하게 알 수 있는 것을...... 절룩바리 스님으로 부터 오랫동안 들고 다녔던 '불법의 대의'에 대하여 명쾌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정말 큰 자비심으로 한 중생이라도 구제하려고 열심히 법문을 설해 주셨습니다. 그 스님이 바로 영흥선사였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궁금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풀지 못한 공안들에 대해서는 가끔씩 참구하기도 합니다. '이 뭣고' 화두나 '무'자 화두나 '꿈도 없고 생각도 없이 잠이 꽉 들었을 때의 너의 본래면목은 어디에 있느냐?' 화두나 모두 하나로 돌아가는 것으로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심인 입니다. 앞으로 더욱 참구하여 동정일여, 몽중일여, 생사일여도 자재하게 할 수 있는 신통인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정진할 뿐입니다.
꾸준히 참구하고 늘상 성성적적한 회광반조를 하면서 현실생활 속에서 자유자재하게 실천하면서 묘용도 부릴 줄 아는 '참사람'이 되길 서원하면서 그동안 글을 써온
'나의 신행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무리 하렵니다.
부처님 생명 내 생명 나무 마하 반야 바라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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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신행 이야기 (화두타파에 대한 욕심) ㅣ 전체보기 |
2007/0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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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難得이요 佛法難逢이라. (금생에 허송하면 만생에 불법 만나기 어렵다)
마음법을 공부하는 과정중에도 끝없이 생각들은 일어나고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몸이 있고 6식이 엄연히 작용하고 있으니 생각이 홀연히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안심을 하면서 더 이상 수시로 일어나는 생각과 씨름을 하지 않게 되었고 생각을 보는 순간 사라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생각은 망상이고 무명이라고 생각했고, 오직 무심만이 진여본성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생각이 덜 일어날 수 있도록 화두참구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의 몸은 쉽게 움직이지 않게 되었고, 고요하게 정에 드는 것만을 즐기게 되고 보니, 점점 행동도 민첩하지 않게 되었고, 예전처럼 잘 웃고 잘 떠들던 모습도 사라졌고, 오직 묵묵히 자신을 비춰보는 형상만 하다보니 마음은 점점 굳어만 갔습니다. 화두에 몰입하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사들이 모두 하찮아 보였습니다. 오직 화두를 타파하여 정법안장을 얻고 싶다는 생각 뿐이 였습니다. 점점 변해하는 저의 모습을 오감으로 느끼고 있는 가족들은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평소 엄마의 부드러운 모습이 아니라고 불편함을 전해 왔습니다. 나의 수행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나 자신은 무척 편안하고 행복한데, 가족들은 반대로 예전과 다르게 거리감이 생긴다고 투정을 해오고 있으니, 수행을 한다면서 무언가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 혼자서는 잘못된 점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육조단경을 읽다가 문득 한 구절에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 양선사가 예배하고 이르니 대사께서 말씀 하셨다. “어디에서 오는가?” “숭산입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노는가?” “설사 한 물건이라도 맞지 않습니다.” “다시 닦아서 증득할 것인가?” “닦아 증득할 것은 없지 않으나 오염은 없습니다.” 대사께서 말씀 하셨다. “다만 이 오염이 없는 것을 모든 부처님께서 보호하고 생각하심이며, 너도 이미 이와 같고 나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서천의 반야다라 존자가 예언하시기를 네 발 아래서 한 마리의 망아지가 나와서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일 것이니, 응당 네 마음에 두고서 속히 말하지 말지니라” ....]
오염은 없으나 닦아서 증득할 것은 없지 않다는 말씀이 제게는 큰 안심법문으로 들렸습니다. 좌복에 조용히 앉아서 화두 참구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수시로 홀연히 올라오는 한생각들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공부의 진전이 없음을 불안해 하고 있었던 저에게 안선맞춤과 같은 법어였습니다. 돈오돈수는 단박에 깨쳐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다고 하지만, 수백 생을 윤회해 오면서 길들렸던 업습을 어찌 단숨에 베어 버릴 수 있겠습니까? 이 글귀를 접한 뒤 저는 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들고 있던 ‘무’자 화두를 관하면서 다른 화두들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제 마음과 계합이 되는 화두를 보는 날이면 그렇게 기분이 통쾌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갈 수록 제 마음은 점점 단단해져만 갔고 다양한 선어록에 손길이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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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신행 이야기 (대 발심) ㅣ 전체보기 |
2007/0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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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할 때도 간절한 내가 있었기에 몸과 마음을 조복했고, 좌복에 앉아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을 때도 청정한 내가 있었고,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도 한걸음 한 걸음 발자욱을 옮기는 온전하게 깨어있던 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앉아서 온갖 망상을 부리고 있는 것도 나고, 깨닫겠다고 용맹정진하고 있는 것도 모두 내가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진짜 나는 누구인가?.................... 알고 보니 모두가 나의 진공묘유였습니다. 온통 참나 뿐이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감격에 넘쳐서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 소식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로전 응작여시관.
불성은 항상 나와 함께 있었건만, 단 한번도 그것과 만나지 못했고, 바깥경계에 따라 휘둘리면서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만으로 지금까지 시간을 허비하고 왔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나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던 수많은 제불보살님들을 눈이 있어도 보지 못했고 귀가 있어도 듣지를 못했던 저의 어리석음에 깊은 후회감이 일어났습니다. 온 천지가 문수와 보현으로 보였고 나 역시 천백억화신으로 화현하는 부처였습니다. 그 후 저의 공부는 점점 힘이 붙게 되었고, 간화선에서 임제선법이 가장 강하고 힘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임제선원의 법현스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도 선객들은 스승을 찾아서 수 천리 길도 마다 않고 찾아 나섰다는 말이 있듯이, 공부에 맥을 잡고 보니 좀 더 여실하게 견성을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스님으로부터 ‘무’자 화두를 받고 다시 용맹정진을 하게 되었고, 스님께서는 공부하다가 궁금증이 생기면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서 물어 오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가난한 스님이면서도 법을 팔아 밥을 사려는 생각을 전혀 하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런 스님을 만나 뵙게 된 것이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제 공부길에 손을 잡아 주셨던 여러 선지식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오직 하루 빨리 깨달아서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펼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봉사활동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배웠던 ‘비하라 호스피스’ 교육을 통하여 경희의료원 호스피스병동에서 호스피스환자들을(임종예정자) 대상으로 정신적 케어를 하는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고, 불교상담개발원에서 상담교육을 이수한 뒤 ‘자비의 전화’ 상담원으로도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전생에 지은 복이 없어서 이 생에서 경제적인 여유로움을 갖지 못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서 시간이 나는대로 복을 지으려고 욕심을 내기도 했습니다. 부처님과 조상님이 물려주신 건강한 몸과 깨끗한 마음으로 남에게 따뜻함을 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넘치는 감사함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제가 하고 싶은 전법활동을 충분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여한이 없었습니다. 오직 바른 깨달음으로 사람들 곁으로 다가가서 부처님의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을 뿐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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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신행 이야기 (대 의심) ㅣ 전체보기 |
2007/0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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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조선은 달마에서 5조 홍인까지 전해 왔던 수행법으로 (先修後悟), 묵묵히 오랫동안 좌복에 앉아서 호흡을 관하고 헐떡이는 마음을 쉬며 사량 분별심을 없애는 수행방법입니다. 점점 마음이 쉬게 되면 선지식을 찾아가 공안으로 점검을 받고 인가를 받게 되는 것이 간화선과 비슷해 보이지만, 묵조선은 처음부터 화두를 드는 것이 아니고 정혜쌍수, 선정후혜를 말합니다. 간화선은 돈오돈수를 말하며 단박에 몰록 깨치는 언하대오를 강조합니다.
천마산 선원에서 공부했던 관법수행과 묵조선을 포기하고 간화선을 배우려고 새로운 공부도량을 찾았습니다. 그동안 의심으로 가득 찼던 제 마음을 속 시원하게 답을 내려줄 선지식을 찾기로 했습니다. 조계사 근처에 있는 수선회에 입방하여 간화선의 기본교리에 대하여 배우고 나서 현담 회장님으로부터 ‘이 뭣고’ 화두를 받게 되었습니다. 선방에 앉아 화두를 관하면서 자꾸 관법수행과 혼돈이 되었습니다. 제가 했던 관법수행은 제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번뇌 망상을 여실하게 바라보면서 망상이 망상인 줄 알게 되면 생각을 갖고 생각을 없애려는 수고를 해왔었습니다. 일어나는 파도를 생각으로 가라 앉히는 작업을 해온 것같습니다. 그러나 참고 참았던 망상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 오랫동안 망상을 잠재우려고 애를 써야했습니다. 인욕바라밀로......... (진정한 인욕은 참는다는 생각없이 참아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무수지수)
참선을 하면서도 매 순간 일어나는 한생각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줄을 몰랐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처님처럼 망상이 없을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만 일어났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깨달음은 망상과 번뇌가 전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진정으로 알고자 했던 것은 불생불멸하고 영원불멸하는 <참나>를 찾는 것이였습니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이 뭣고? 제불보살과 역대조사와 천하 선지식들이 한결 같이 찾아 헤매던 <참나>를 나 역시 알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지니고 있으니 찾아 보라’ 하셨던 말씀이 제게는 큰 화두가 되었습니다.
화두를 받고 좌복에 앉아 답을 찾아내려고 제 안에 있는 제7 말라야식을 총동원해서 사량분별을 해가며 이치로 따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제 마음은 답답함으로 가득했습니다. 머리도 아프고 소화도 되지 않았습니다. 화두공부를 포기 하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냥 살아도 되는 것을 왜 공연히 맨살에 상처를 내고 있는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그동안 불법의 대의를 알고 싶어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법을 탁발하러 다녔던 저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비춰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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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신행 이야기 (대 신심) ㅣ 전체보기 |
2007/08/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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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덕 부루나시여, 정신을 집중하여 저 비구들의 속마음을 잘 관찰한 다음 법을 설하십시오. 보석으로 만든 그릇에 썩은 음식을 채우지 마십시오. 먼저 저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소서. 유리를 수정으로 혼동하지 마십시오. 대덕 부루나여, 중생의 근기를 살피지도 않고 그릇이 큰 사람을 작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마십시오. 상처 나지 않은 곳에 상처를 내지 마십시오. 큰 길로 가려는 이를 작은 길로 안내하지 마십시오. 큰 바다를 소 발자국 안에 가두어 넣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수미산을 겨자씨 안에 집어넣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태양빛을 반딧불로 바꾸어 놓지 마십시오. 사자후 소리를 여우 소리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유마경. 부루나의 설법 중에서] >>
그동안 포교현장을 찾아 다니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전달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무척이나 후회스러웠습니다. 제 한 몸도 바르게 깨치지 못하고서 남을 구제하겠다고 다녔던 제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기 위하여 마음 도리를 꼭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간절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제가 보았던 경전들은 대부분 대승경전들이였는데 그 속에도 심지법문이 실려 있었건만 불법의 핵심종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문자에만 끄달려 왔던것 같았습니다. 선원장 법회에 동참하면서 스님들께서 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새롭게 들렸는데, 아는 법우님에게 여쭤보니 그런 말씀들은 선어록에 모두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장 책방으로 달려가서 선어록들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속에는 그동안 선사님들이 설하셨던 법문들이 그대로 들어 있었으며, 책을 읽으면서 제 마음과 계합이 되는 문장이 나오면 너무나 신기했고 기뻤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귀들은 혼자 힘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어록을 바르게 공부하고자 마음을 먹고 있을 때, 잘 알고 있는 법우님으로부터 스님을 소개 받게 되었습니다.
선문화연구원을 운영하고 계시는 성본스님을 만나게 되어 신심명, 증도가, 임제록, 무문관, 육조단경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간결하고 절제된 언어로 우리 생활 속에서 활용하고 있는 선의 생활과 연계 시키면서 수강생들에게 아주 열심히 불법을 전해주셨습니다. 그 때 저는 성본 스님처럼 많이 배워서 불법을 잘 전하는 부루나가 되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스님께 부탁의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운영하고 있던 대학생 법회때 쓸 스님의 저서 ‘반야심경’을 몇 권 달라고 했습니다. “ 스님... 학생법회 때 필요해서 그러는데, 반야심경 몇 권만 주십시오.....” “몇 권이 필요한데? ” “스님, 제 능력만큼 주십시오.....” “자네 능력으로 따지자면 단 한권도 줄 수 없지, 그렇지만 법회에 오는 학생이 모두 몇 명이나 되는가?” “하하하...........” 저는 순간 방바닥을 치면서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스님의 생각은 너무나 지당하셨기 때문이였습니다. 사실 그 때 제 스스로 반야심경을 확실하게 통찰하고 있지 않았었습니다.
그 후 더욱 발심하여 열심히 경전과 어록을 보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을 통한 실참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깨달음에 대하여 원력을 세우고 있을 즈음에, 불교카페를 통하여 다양한 구도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선지식들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 순간 부처님의 가피에 감사기도를 올리면서 저의 바른 깨달음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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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신행 이야기(선원장 법회을 듣고서) ㅣ 전체보기 |
2007/0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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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를 배우고 묵조선을 배우고서도 확연하게 마음 법을 알 수 없었던 것은 저의 배움에 대한 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줄 스승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더 늦기 전에, 이 생이 끝나기 전에, 제대로 불법을 만나서 꼭 깨달아야겠다는 생각이 너무나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선지식을 찾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큰 스님들은 지방에 계셨기에 가정주부로서는 쉽게 선지식을 찾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주변에서 참선공부 하는 곳을 찾아보면 대부분이 저녁 시간 이였기에 가족이 모여 있는 저녁시간에는 집을 나서기도 어려웠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참선을 배운다는 것은 마음 뿐 이였고 배움에 대한 갈증은 더욱 심해져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계사에서 전국 선원장 법회가 있다는 소식을 현대불교신문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불기 2548년 5월은 제가 깊은 꿈속에 잠들어 있다가 활짝 깨어나는 날 이였습니다. 신문 지상으로만 뵙던 큰스님들을 한자리에서 매 주 만나 뵐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기뿔 수가 없었습니다.
고우스님께서는 ‘본래부처’임을 철저히 믿고 늘 성성적적한 가운데 한 생각 일어난 자리를 돌이켜 비춰보는 ‘회광반조’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수행법을 닦더라도 우리가 본래부처 임을 꼭 믿고 해나가면 된다고 하십니다. (제 소견 : 묵조선에서는 늘 회광반조를 강조했으며 한생각 일어나고 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면밀하게 관찰했습니다. 단지 화두가 없었을 뿐이였습니다.)
대원스님께서는 부처님의 말씀을 요약하자면 ‘안심입명처’ 라고 하시면서, 우리 중생이 갖고 있는 욕심과 욕망으로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제 소견: 마음은 공성이기에 연기법을 제대로 알기만 하면 욕심과 욕망의 실체가 없음도 알게 되기에 고통도 없습니다.)
도현스님께서는 정법을 바로 알려면 우선 부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한다면서, 부처님은 어떤 자세로 일상생활을 하셨으며, 어떤 인격을 갖추셨는지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소견: 부처님의 일대기를 읽어보면 인간 붓다를 만날 수 있습니다.)
현웅스님께서는 현실적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만나고 있는 간화선 수행에 대하여 간결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 소견: 불자님들이 절에 가서 스님께 고통을 호소하면 ‘부처님 앞에서 절이나 해라’는 말씀을 종종 합니다. 그러나 스님들께서는 고통의 원인을 살펴서 사람마다 근기에 맞는 방편을 써서 얽힌 실타래를 풀어 주어야합니다.)
선원장 법회에 매 주 동참하면서, 오랫동안 제 안에 갈증으로 가득 차 있었던 의심들이 한꺼번에 쏱아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저의 신행생활이 바로 수행 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신행과 수행이 다른 줄로 알고 있었는데 스님들의 법문을 듣다보니 그 동안 제가 활동해온 모습들이 바로 부처님 마음에서 작용한 것이였습니다. 오랫동안 부처님은 어디에 계실까? 생각하며 저 멀리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계신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지금 바로 작용하고 있는 이 자리에서 보여주고 있음을 명백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성의 작용을 통하여 부처님은 늘상 나와 함께 먹고 자고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법당 안에 앉아 법문을 들으면서 조용히 환희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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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신행 이야기(구도자) ㅣ 전체보기 |
2007/08/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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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월 셋째 주 일요일 날이면, 부산 범어사의 산내 암자인 원효암에 계신 큰스님께서 이곳 서울 선원에 오셔서 법문을 하셨습니다. 큰 스님의 법문내용이 제게는 한 달 먹을 양식이 였습니다. 그곳 선원에 계시는 주지스님의 법문보다 오히려 큰스님의 법문이 제게는 쏙쏙 들어왔습니다. 부처님과 가섭이 이심전심의 염화미소를 지었다고 했듯이, 큰스님의 말씀은 제 가슴을 아주 시원하게 만들어 주셨으며 한 달 동안 저자거리에서 마음껏 법을 펼칠 | | | | | | | |